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문단 편집) == 주류 프랑크푸르트학파와의 차이 ==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마르쿠제의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수정과 혁신 과정이자 현대 사회를 분석하고 변혁시키기 위한 급진적 유토피아의 기획이었다. 따라서 '''마르쿠제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많은 점을 공유하더라도, 그 학파의 대다수 구성원은 그러한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폐기하거나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마르쿠제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 도서출판 옹기장이(2010) p.172 >비판 이론이 본래 정신을 유지하려면 연구소 비판론자의 주장처럼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물신화를 경계해야 했다. 연구소의 급진적인 젊은 세대는 이런 변화가 반영된 이데올로기에 실망했다. 호르크하이머와 다른 사람들이 1949년대에 강력하게 투쟁한 냉전 시대의 정신이 1950~1960년대에 점차 내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함에 따라 여전히 좌파로 의연하게 남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마르쿠제와 점차 갈라섰다.''' 사회적인 유대 관계는 유지했기에 이런 불화가 대외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불일치는 첨예했다.''' 마르쿠제는 국가원수와 동석할 정도인 미구 주요 대학의 총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명성을 얻었다. 사실 마르쿠제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관계는 대외적으로 의미가 없었다. >---- >마틴 제이 『변증법적 상상력』 노명우 옮김, 동녁 출판사, 2021, p.497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가 대부분은 유토피아적 옳은 사회나 대안에 대해 미리 규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지 현재 사회의 나쁜 것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고, 나쁜 것을 예상하고 폭로하는 것을 통해서만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부정'을 통해서만 제대로된 학문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유토피아적 청사진을 제시한 [[카를 마르크스|칼 마르크스]]를 비판했었던 것이었다. 이에 반해 마르쿠제는 프로이트 이론의 수용과 변형을 통해, 긍정의 유토피아 이론을 전개한다. 마르쿠제는 비판 이론의 추진력이, 잘못된 현실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더 '좋은 것'으로 대체하려는 힘에서 나왔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 이론은 단순한 비판이나 부정에만 그쳐서는 안 되며 현실 초월적인 이상적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유토피아의 제시는 정치적 이론과 실천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는 게 마르쿠제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주류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마르쿠제를 배척할 수밖에 없었다.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비판 이론"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마르쿠제와 프랑크푸르트학파 사이의 이론적 갈등을 점점 더 첨예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갈라서게 된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